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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정보

안양시장애인인권센터 "모든 개인이 인권지킴이가 되는 그날까지"
작성일
2015-02-10 00:00

모든 개인이 인권지킴이가 되는 그날까지 [안양시장애인인권센터 최승민 소장] 칭찬릴레이 / 기획기사

2015.02.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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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에는 '안양시장애인인권센터'와 '최승민'이라는 이름, 연락처 등이 자세히 나와 있었지만 어디서도 직함은 발견할 수 없었다. 센터를 만든 지 아직 1달, 아직은 준비하는 단계이기도 하고, 센터장이나 소장 어떤 호칭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이들이 '인권'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지키려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인권 방어기지로 만든 안양시장애인인권센터

군대에서 사고로 다리를 다친 최승민 씨(42)가 직장을 다니며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도와주어야 할 곳이 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아들의 사고 이후로 안양에 있는 관악복지관에 꾸준한 봉사를 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현재 안양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한 마디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센터로 들어갔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와 달리 급여는 적거나 없었지만 그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로부터 벌써 7년, 도와주려 했던 일은 그의 직장이자 사명으로 바뀌었고 이번 해를 기점으로 그는 또 새로운 전환점에 섰다.   

2008년부터 작년 말까지 안양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독립을 결정했다. 권익옹호와 동료상담, 차별상담, 인권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지역 센터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이든 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가진 인권을 침해할 수 없도록 이곳이 방어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편하게 와서 차를 마시고, 자신의 어려움을 터놓고 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일반 성인들 대상으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홍보자료와 책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기존에 있던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고, 사무실을 꾸리느라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났다.  

 

불편한 이들을 위한 슈퍼맨이 되어

뭔가를 배우고 얻으려면 이동은 필수적이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이 확보가 안 된다면 어떤 권리도 지킬 수가 없고 어떤 사회생활도 할 수가 없다. 이를 잘 알기에 그는 센터에서 근무하며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차량이동지원을 위해 24시간 휴대폰을 켜놓았다. ‘오죽 절박한 상황이면 나에게 연락이 왔을까’ 싶은 마음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들의 이동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든 찾아갔다. 안양경찰서와 소방서 상황실에 그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위급상황이 발생될 때에도 그는 달려갔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또한 보조기를 빼면 휠체어를 타고, 발목이 움직이지 않아 일반적인 차량을 운전하기 어렵다. 발 대신 손으로 액셀러레이터를 작동할 수 있는 핸드컨트롤러가 설치된 차를 운전해야 하지만 차량지원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기에 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차량지원을 하다 보니 차 안에서 장애인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눌 수 있었다. 동료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상대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권익옹호로 나아가기도 했다. 즉 차량운행 하나로 여러 가지의 일을 같이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로써 ‘착한수레’, ‘보장구수리센터’등이 자리를 잡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이 적극성을 인정받아 센터는 경기도 우수선정 기관으로 선정되었고, 국고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슈퍼맨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슈퍼맨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서울에서는 장애인콜택시, 안양에서는 착한수레로 불리는 특별교통수단 지원은 휠체어나 스쿠터가 올라탈 수 있도록 차량 뒤쪽에 리프트가 달린 차량을 지원하는 일이다. 병원 이동조차 어려웠던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운영을 제안하고, 사전 진행을 했다. 

고가인 휠체어 부품을 수급하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보장구수리 시에 구매금액을 지원하는 보장구수리센터 수립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수급자에게는 10%, 일반 장애인에게는 20% 지원 금액이 나온다. 타 지역에서는 자립생활센터내에 보장구수리센터가 있지만 규모가 작고, 찾기가 어려웠던데 반해 이를 개별사업으로 빼서 독립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게끔 했다. 

이렇게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안양이 장애인자립에 있어 큰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도 그는 아쉬움이 남았다. 빠른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느라 정작 세심한 부분을 잘 챙기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봉사가 아닌 책임감으로

그는 아무리 적어도 봉급을 받고 시작했기 때문에 ‘봉사’나 ‘보람’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미화하고 싶지 않고, 일로써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에게는 불편한 누군가를 돕는 일이 봉사보다는 책임감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오고 있는 그는 장애와 비장애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지 않고, 장애인과 예비 장애인으로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요. 아기 때는 어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자라면서 공부를 못하면 학습장애를 겪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장애로 여겨지며 쉽게 벗어나기도 합니다. 또 넘어져서 다리를 다치면 당분간은 절뚝거리면서 걸어요. 이 순간도 잠시 장애인이 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애에 15가지 유형에 들어가진 않지만 순간순간 장애를 겪을 때가 있어요. 반대로 지속되는 뚜렷한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도구나 환경으로 나아질 수 있다면 보건복지부에서 명시된 장애가 있더라도 이를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겠죠. 지금 저에게 보조기와 휠체어가 제 발이 되어주고 있는 것처럼요.”

그는 직접 불편해 봤으니 어떻게 더 나을 수 있는지, 직접 시선을 받아봤으니 어떤 느낌인지 더 잘 알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강사단을 만들어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고, 단위 지역 내에서 할 수 있는 세미나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권지킴이가 되는 그 날까지 그의 열정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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