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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정보

장애등급제 폐지 첫 발, 갈 길 ‘구만리’
작성일
2020-01-02 00:00

2019년 장애계의 최고 이슈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8년 11월 ‘심신장애자복지법’에 의해 장애등록이 시작된 후, ‘장애등급제’는 장애인 복지 지원의 기본적 토대로 장애인 복지 정책의 큰 축이 돼왔습니다.

하지만 의학적 기준의 등급으로 인해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는 장애계 주장에 따라, 정부가 움직이며 31년만의 장애계의 염원이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현재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행된지 6개월이 되어가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앞으로 나가기 위한(Forward) 행진입니다. 지금까지 쳐 박혀 살아온 집구석과 시설에서의 탈출 행진(Exodus)입니다. 포기 할 수 없는 행진입니다. 세상을 향(Toward)한 손을 내밉니다. 손을 잡아주십시오!”

7월 1일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 1500여명은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잠수교를 지나, 서울역까지 걸었습니다.

“장애등급제 때문에 숨을 크게 쉬어도 등급이 하락될까봐 전전긍긍 살았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시설로 보내져 소리 소문 없이 죽어도 내 자식이 왜 죽었냐 말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간 서러웠던 마음들도 폭발했죠. 그렇게 31년 만에 이뤄진 장애등급제 폐지, 뭐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보건복지부가 밝힌 장애등급제 핵심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으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종합조사 도입, 전달체계 강화 3개의 축으로 구성됩니다.

종전의 1~6급의 장애등급은 없어지고,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해 우대혜택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장애인 욕구와 환경 등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가 도입된 것이 특징인데요.

먼저 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 응급안전서비스 4개 서비스에 대해 기존 등급에 따른 획일적 제공에서 벗어나, 종합조사표에 의한 욕구조사 후 매뉴얼에 따라 서비스가 주어집니다. 내년에는 이동지원, 2022년에는 소득 및 고용지원 분야에 단계적 적용될 예정이고요.

하지만 과연, 욕구에 맞춰서 원하는 만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요?

‘당장 7월 적용될 활동지원의 경우 평균 지원 시간은 7시간 확대될 예정이며, 월 최대 시간을 480시간(1일 16시간)으로 현행 441시간(1일 14.7시간)보다 늘렸다’ 복지부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6월 25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장애등급제 폐지 피해자, 아빠를 살려주세요.”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행된 지 1달이 지난 8월 중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게시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사연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국민청원 게시글의 댓글, 각종 장애인관련 카페 등을 활용해 그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정 모 씨(63세)는 2016년 사고로 사지마비 중증장애인이 됐으며, 3년이 지난 올해 7월경 퇴원을 준비하며 활동지원을 신청했다가 총 월 330시간을 부여받았습니다. 독거에 와상장애인으로 목아래로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그에게 1~15구간 중 6구간은 너무나 부당했습니다. ‘대체 복지부가 주장하는 최대 480시간은 누가 받을 수 있을련지..’ 그의 자녀는 울분을 토했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정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블뉴스에 장문의 메일을 보낸 전남 광주에 사는 이 모(34세, 여)씨는 31세의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돌봄 족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신혼임에도 남겨진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그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활동지원의 대폭 상승을 기대했으나, 월 240시간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을 뒤로하고 동생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 가정은 이제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고 남편은 지쳐서 제게 이혼을 이야기 합니다. 법적으로 자매는 부양의무자가 아닙니다. 헌데,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홀로 계속 안고가라고, 네 일이라고 하십니까?”

에이블뉴스에는 앞서 소개한 정 씨와 이 씨의 사연 외에도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많았습니다. 등급제 폐지 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종합조사를 받았다가 ‘등급 외’가 나온 정순모(52세, 남)씨의 사연도 다뤘습니다.

기사로 담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활동지원 시간이 내려갔고, 도무지 뭐가 달라졌는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는 이야기, 또 등급이 폐지됐는데 왜 모두에게 장애인연금을 주지 않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소득 관련 개편은 2022년에나 돼서야 가능하다고 하니, 한숨부터 ‘푹’ 내쉬던 독자 분들의 절망이 수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인 장애등급제 폐지. 내년에는 어떻게 기대를 해볼 수 있을까요?

일단 국회를 통과한 예산은 전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활동지원 예산은 최종 1조3056억7200억원으로 정부안보다 305억원 늘어났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간당 단가 인상, 대상자 확대 등만 담겼을 뿐, 정씨나 이씨의 동생과 같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이 담긴 내용은 없습니다.

물론 장애인연금 대상 확대 내용도 담기지 않았고요.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 확보를 외치며 지난 10월 22일부터 벌써 70일째 기획재정부 소유 건물을 점거,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부 또한 지난 10월 28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종합조사 고시개정전문위원회’를 구성, 내년 6월까지 장애유형별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종합조사를 개정하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년 4월 15일은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는 제21대 총선입니다. 이에 진정 장애인을 위하는 정책을 내놓는 정당에게 ‘한 표’로 압력을 행사하는 투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17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9대 대통령선거 장애인 투표율은 무려 84.1%에 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정책을 앞당길 수 있도록 정치권에 장애계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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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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