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장애인 차별…'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있나
최종수정 2021.04.12 07:00 기사입력 2021.04.12 07:00
최근 시험 응시 제한·음식점 입장 거부 등 장애인 차별 사례 잇따라 발생
'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의문
지난 13년간 법무부 시정명령 조치 단 2건에 그치기도
장애인인권단체 "인권위의 낮은 장애감수성 개선돼야"
[아시아경제 김초영 기자] 최근 휠체어를 탄 60대 장애인 A씨가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식당 종업원은 "점심시간이라 곧 손님이 밀려올 텐데 왜 들어오냐"며 입장을 막은 뒤 A씨가 항의하자 마지못해 입구 주변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지난해 한 대형마트에서 장애인 안내견과 봉사자의 입장을 저지해 논란이 불거진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비장애인과 같은 삶을 누려야 마땅한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 속 깊숙이 자리잡은 차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2019년 국가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심각한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3.7%가 '매우 심각', 55.4%가 '다소 심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넘는 69.1%가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한 것이다.
인권침해나 차별을 많이 받는 집단을 묻는 항목에선 장애인(29.7%)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이주민(16.4%), 노인(13.4%), 여성(13.2%) 순으로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 의식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자 제정된 지 10년이 넘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정명령의 요건을 완화하고 시정 기구 간의 유기적인 업무 협조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으나 최근 장애인 차별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며 여전히 실효성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7년 4월 제정되어 2008년 4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차별적 시선을 부당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전인 2001년 11월부터 2008년 4월까지는 장애를 사유로 한 진정이 전체 진정의 14% 수준이었던 반면, 시행 이후인 2008년 4월부터 2009년 12월까지는 전체 진정의 50% 수준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법무부의 시정명령 조치가 사실상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아 실질적인 권리 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13년간 내려진 시정명령 조치는 단 2건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지난 2010년 한 남성이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은 뒤 구미시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직권면직 통보를 받은 사건에 대해 최초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2012년 수원시장에게 수원 지하상가의 장애인 이동권 제한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마지막으로 시정명령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 인권단체는 인권위의 낮은 시정권고율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현행법안은 인권위가 법무부에 시정권고를 하면 법무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하고 있는데, 인권위의 시정권고율 자체가 낮은 탓에 법무부의 시정명령 조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까지 인권위의 전체 장애 차별 진정에 대한 취소 및 각하율은 90%에 달한다.
인권위의 낮은 장애 감수성과 이로 인한 법리 판단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간 꾸준히 나왔었다. 20대 국회 당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등과 비차별은 인권의 근본이라는 점에서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한 권리 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정명령제도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한차례 더 관련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같은달 29일 공포되었다. 법안은 △시정명령의 요건을 완화하고 △시정명령 시 차별행위자와 피해자 등이 의견 진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법무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하는 경우 인권위에 그 내용을 통보하도록 하여 차별받는 이들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심각한 피해의 정도'와 '공익에 미치는 중대성'이 포함돼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왔던 제43조 1항을 수정하며 실질적인 장애인 권익 구제가 실현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을 가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약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법은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악의적인 경우'에 대해선 △차별의 고의성 △차별의 지속성 및 반복성 △차별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 피해의 내용 및 규모를 전부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4개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는 드물어 가해자 처벌까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약한 처벌은 차별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지 못해 일상 속 편견과 차별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달 8일 △새로운 형사사법제도 안착 및 지속적 개혁 추진 △국민이 안심하는 안전사회 △민생에 힘이 되는 법무행정을 2021년도 주요 업무계획으로 발표한 가운데 '장애인차별시정명령제도 활성화' 또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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