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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정보

[뉴스] 어휘 습득·대인 관계에 좋은데… 발달장애인 읽을 ‘책’ 부족하다
작성일
2025-09-12 16:10

읽기 쉽고, 발달장애 시선 맞춘 책 필요
시끄러운 도서관·낭독극 등 친화적 문화 늘어야


학생 이미지
인간은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 사용할 단어를 배우고, 삶의 이런저런 고난을 간접 체험한다. 이는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만, 정작 다독하는 발달장애인은 많지 않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발간한 ‘2024년 장애인 독서 활동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독서율은 32.7%에 불과하다. 성인 비장애인 독서율인 43%보다 한참 낮다. 발달장애인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그들의 삶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책의 가짓수가 아직 적은 탓도 있다.

◇읽기 쉬운 책 적고, 도서관 문턱 높아
도서관 서고에 꽂힌 수많은 줄글 책은 대부분 발달장애인에게 ‘잘 읽히지 않는 책’일 뿐이다. 2024년 ‘장애인 독서 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주된 이유로 “책을 읽고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꼽혔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로서,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출간하는 발달장애인용 ‘읽기 쉬운 책’을 감수한 김명일 감수위원은 “한 장에 문장이 5~6개 있고, 글씨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야 읽기가 좋다”며 “단어가 어려우면 책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린이용 동화책을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0대 초반의 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도서출판 날자 조윤영 대표는 “아이가 어릴 땐 어린이용 동화책 등을 읽힐 수 있으니 그나마 책 선택지가 많았다”며 “그러나 중학생 즈음 되자 아이의 연령대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다루고 있으면서, 발달장애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아이는 자라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당면한다. 부모, 선생님, 친구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이 좌절되기도 한다. 친구와 다툰 후 화해하는 법, 부모와의 오해를 푸는 법 등을 다룬 청소년용 책을 읽으면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 동기를 생각해보고, 이런 상황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사회적 훈련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이런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발달장애인 청소년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

도서관에서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도 발달장애인이 책을 가까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구로종합사회복지관의 이지혜 사회복지사는 “함께 온 보호자가 책을 소리 내 읽어줘야 하는 때도 있고,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다”며 “조용히 책만 읽어야 하는 환경이라면 발달장애인이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자료개발과 홍은진 주무관은 “발달장애인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소음이 용인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각 교구 비치된 ‘시끄러운 도서관’ 있어
다행히 발달장애인의 독서 문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시끄러운 도서관’이 한 예다. 시끄러운 도서관은 구로구와 은평구에서 운영되고 있고, 이름은 조금 다르지만 시끄러운 도서관과 비슷한 곳으로 성동구에 ‘와글와글 도서관’이 있다. 이들 도서관 안에서는 소리 내 책을 읽거나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정숙하지 않아도 된다. 비장애인 역시 이용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읽기 쉬운 책’이 기존 도서관 대비 많이 구비돼 있다는 점에서 발달장애인 특화 도서관이기도 하다. 이지혜 사회복지사는 “감각 교구를 도서관 곳곳에 비치하고, 촉각도서(손으로 만져가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도서)·소리도서(음성 효과 장치가 있는 도서) 등 특수도서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도서 비중을 늘렸다”며 “소음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간이라서 발달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일반 도서관보다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내부구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시끄러운 도서관'/사진=이해림 기자

◇다양한 영역의 ‘쉬운 도서’ 배포 신청 받아
발달장애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제작하려는 노력도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출판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읽기 쉬운 책 개발 지침’을 만들어 배포했다. ▲‘염려’ ‘병자’ 등 어려운 단어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쓰는 ‘걱정’ ‘아픈 사람’ 등 쉬운 단어로 표현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한다면 그 어휘에 대한 설명을 각주 등으로 처리해 제시 ▲한 문단 안에서는 한 가지 주제만 다루기 ▲행동의 주체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수동문 대신 능동문 사용 등의 현실적 지침이 담겼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역시 이 지침에 따라 읽기 쉬운 도서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홍은진 주무관은 “발달장애인 당사자, 특수교사, 복지관 담당자 등으로부터 문학, 건강, 직업 소개, 여행, 성교육, 정치, 마음 건강 등 다양한 영역의 읽기 쉬운 도서 배포 신청을 받고 있다”며 “2022년부터 지금까지 총 70종의 도서를 504개 관에 배포했다”고 말했다. ‘신라부터 조선까지 우리 문학을 이끈 11명의 작가들’ ‘불편한 상황에서도 할 말은 하고 싶어’ ‘아픔에도 우선 순위가 있나요?’ ‘오백 년째 열다섯’ 등의 도서를 바탕으로 만든 읽기 쉬운 도서가 가장 인기가 많다.

펼친 책 사진구로종합사회복지관​ '시끄러운 도서관'에 비치된 읽기 쉬운 책/사진=이해림 기자

◇발달장애인의 ‘실생활 문제’ 다루는 책 늘어야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비장애인을 위한 도서에 비하면, 책의 수와 소재의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조윤영 대표는 “현재 발달장애인을 위해 나온 책은 ‘햄릿’ 같은 기존 책의 단어와 문장을 바꿔, 읽기 쉽게 편집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물론 이런 책도 필요하지만, 발달장애인의 실제 생활과 대인 관계에 연결되는 소재에 관한 탐구도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영 대표는 발달장애인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출간하려 도서출판 날자를 차린 동시에, 제미나이(Gemini) 등 인공지능(AI) 챗봇을 이용해 발달장애 자녀를 위한 스토리북을 만드는 방법을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 음식을 먹고 싶지만 건강도 걱정되는 발달장애인 자녀의 실제 상황을 기반으로 하는 동화를 직접 만들었다. 챗봇에 원하는 이야기의 주제와 대략적 이야기 흐름, 서술 방식 등을 명령어로 간단하게 써넣기만 하면 완성된다. 조윤영 대표는 “아이가 실제로 가진 고민을,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다뤄주는 이야기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문장과 어휘 난이도를 조정할 뿐 아니라 소재 선정에서부터 아이들의 욕구를 반영해준다면, 아이들도 독서를 통해 더 큰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북 이미지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도서출판 날자 조윤영 대표가 인공지능 챗봇 제미나이로 만든 스토리북/사진=조윤영 대표

발달장애인이 책을 가까이하려면, 책 읽기에 동반되는 문화 생활도 필요하다. 조윤영 대표가 발달장애인이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독서 문화생활로 꼽은 것은 ‘낭독극’이다. 발달장애인 또는 비장애인이 여럿 함께 모여 각자 맡은 부분을 직접 소리 내 읽는 것이다. 조 대표는 “발달장애인 아이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결핍이 있는데, 함께 모여 책을 읽는 활동이 이런 결핍을 해소해준다”며 “또 책을 소리 내 읽다 보면 아이들이 평소 읽던 것보다 더 어려운 책도 거뜬히 읽어내더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발달장애인은 독서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으로 올 수 있다. ‘2024년 장애인 독서 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들의 주된 독서 목적으로 ‘책 읽는 것이 즐거워서’가 꼽혔다. 조윤영 대표는 “요즘은 자기계발, 투자 성공, 더 나은 곳으로의 이직 등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만, 독서의 본질은 그냥 무언가 읽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에 있다”며 “발달장애인이야말로 성과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책이 주는 읽는 즐거움을 순수하게 누릴 수 있는 당사자니, 이들의 독서가 활발해지면 사회 전체에 긍정적 독서 문화가 생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헬스조선 이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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